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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020

[세하유리] 앨리스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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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원더랜드 이세하 x 인 원더랜드 서유리

 

 

 

 

 

 ‘, 푹신푹신하네...’

 

 의식을 차린 유리가 처음으로 생각한 것이다. 푹신한 무언가에 누워있는 자신을 인지하자, 유리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일단 이 촉감으로 봐서는 자신은 침대에 준하는 무언가에 누워있는 거 같았다. 그런데 만약 침대라면 분명 올려다보는 풍경이 천장 같은 것일 텐데, 지금 유리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요즘 보기 드문 푸른 하늘이었다.

 

 건물 바깥에 침대가 있다는 건 일단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잖아?! 그리고 유리는 그제야 침대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누워있는 것이 매트리스라고 하기에는 너무 푹신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래서 유리는 몸을 반쯤 일으켜 자신이 깔고 있던 물체를 내려다보았다.

 

 “버섯...?”

 

 놀랍게도 그것은 버섯이었다. 사람만한, 아니 사람보다 더 큰 버섯이 이 세상에 있다고? , 물론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냥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 후 유리는 자신의 옷차림이 이상하다는 것도 발견했다. 자신은 입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충동구매를 해서 옷장에 구겨넣는 것도 하지 않을만한 옷을 지금 자신이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재 유리가 입고 있는 옷은 하얀색을 베이스로 하는 서양풍의 짧은 드레스였다. 검은색 리본이 군데군데 장식되어 있고, 무채색만으로는 옷을 예쁘게 만들기 어렵다고 느꼈는지 드물게 민트색도 같이 녹아있었다. 발에는 드레스에 걸맞은 앙증맞은 구두도 신겨져 있었다.

 

 일단 유리는 자신이 왜 이런 옷을 입고 있고, 왜 이런 데에서 눈을 떴는지 조사를 하기 위해 버섯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버섯은 유리가 앉아 있던 무게감에서 순식간에 풀려나 크게 휘청거리며 포자를 내뿜었다. 유리의 키보다 더 컸던 버섯이었고, 그 버섯에 아래에 있었기에 당연히 유리는 그 포자를 다 들이마쉬었다. 포자 덕택에 기침을 한바탕 크게 치른 유리는 그 버섯의 포자가 자신의 온몸에도 덕지덕지 묻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조사를 해야 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이 기분 나쁜 포자를 씻는 게 우선이라고 유리는 여겼다.

 

 그래서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다니는데,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시냇가를 발견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 유리는 단숨에 시냇가로 내려가 포자를 물로 씻었다. 그 김에 아까부터 있었던 갈증도 씻어낼 겸, 물도 손바닥에 한 움큼 담아 마셨다. 청명하고 맑은 맛이 나는 물이었다. 이쪽은 환경이 깨끗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갈증도 풀고, 포자도 씻겨내자 유리는 한층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냇가의 물 어찌나 맑은지 거울 대신으로 써도 될 정도였다 에서부터 알 수 있었던 사실이지만 정말 깨끗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시냇가 건너편에서는 유리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고라니 같이 생긴 것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은 유리는 불현 듯,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랑 여기 소풍으로 와도 될 거 같아, 라고.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 유리는 그제야 자신의 목적이 떠올랐다. 일단 전체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처음부터 일어난 일을 곰곰이 회상해 보았다. 혼자 버섯의 숲 일단 부르기 편하게끔 유리가 멋대로 지어낸 것이지만 에서 눈을 떴다. 게다가 왜인지 모르지만 자신은 이렇게 서양 동화에서 볼 수 있는 깜찍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대충 둘러본 바에 의하면 여기는 적어도 대한민국 안은 아닐 거 같았다. 일단 환경부터 다르다. 전체적으로 알록달록하고, 무언가 다른 의미로 엄청 신선하기도 하고...

 

 가만히 있어봤자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아서 유리는 시냇가를 따라 걷기로 했다. 물은 생명체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러니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 사는 마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람 한 두 명은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렇게 무작정 걷는데 겉보기엔 움직이기 불편할 거 같았지만 의외로 움직이는 데 그렇게 거추장스럽지 않은 신기한 옷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의 시야에서 어떤 사람이 포착되었다.

 

 그 사람은 아까 전의 유리처럼 시냇가 바로 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휴식을 취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지 유리가 바로 코앞에 올 때까지도 유리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유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하?”

 “...”

 

 웬일이니, 바로 세하였다! 세하도 유리와 짝을 이루면 어울릴 만한 옷을 입은 물론 세하가 입은 것은 좀 더 제복에 가까운 형태였다 상태였다. 묘하게 자꾸 앞섬에 눈길이 가는 저 패션은 넘어가도록 하고, 유리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세하의 두 손을 붙잡고 감격의 재회를 나누었다.

 

 “세하, 너도 여기로 왔었구나!”

 “...”

 “? 왜 그래?”

 

 너무 반가운 유리에 비해 세하는 어색한 걸 넘어 처음 보는 사람처럼 서먹하게 굴었다. 이때까지 유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세하가 얼굴만 같은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열심히, 개학 첫날처럼 자신을 소개했다.

 

 “, 유리야! ..!”

 “...그니까...”

 “거기 너! 무슨 짓이야?!”

 

 반문하려는 세하와 더불어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유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성인 둘이 세하와 자신의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남자도 유리가 어디서 보았던 인물들이었다. 그건 바로,

 

 “제이 아저씨!? 볼프강 씨?!”

 “...넌 누군데 우리를 알고 있는 거지?”

 “?”

 

 유리는 여기서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일단 눈에 익은 사람이 그것도 세 명이나 나타났는데, 그 세 명 다 모두 자신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서야 유리는 얼굴만 같은 제3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도달했다. 유리가 이렇게 혼자 깨우치고 있는 사이, 제이가 세하에게 참 이상한 말을 하나 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 ...”

 “, 전하? 지금 세하를 뭐라고 부르신 거예요?”

 

 유리의 얼빠진 반응에 제이 대신 볼프강이 호통을 쳤다.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이분은 하트 나라의 왕자시다.”

 “왕자? 세하가요?”

 

 뭐, 세하가 왕자라고 해도 될 만한 관상이긴 하지만...아니, 잠깐 진짜? 이쪽 세계의 세하는 무려 왕자였다. 장난삼아서 왕자님이라고 부르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져서 유리는 무척이나 놀랐다. 그렇다면 지금 유리 앞에 있는 제이와 볼프강은 그런 세하를 호위하는 병사인 거 같았다. 세하와 비슷한 제복을 입고 있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로 보아서는 아마도 그런 게 분명했다.

 

 아, 이거 일단 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갈 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2 vs 1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흘러갈 거 같을 때, 구세주가 한 명 등장했다.

 

 “잠깐.”

 

 바로 세하였다. 아까 전에 유리와 단둘이 맞닥뜨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엄숙한 분위기로 세하는 단 한마디로 제이와 볼프강이 금방이라도 칼을 휘두를 거 같은 상황 자체를 막았다. 제이와 볼프강은 그런 세하를 보며 왜 멈춰 세우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인지 설명을 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잠깐의 침묵 후, 세하가 말했다.

 

 “아마 앨리스일지도 모른다.”

 “앨리스!?”

 

 앨리스? 그거 동화에 등장하는 이름이 아니던가? 그러자 유리는 자신이 여기로 떨어지기 전, 앨리스라는 여자 아이가 나오는 동화를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제야 유리는 안심이 되었다.

 

 아, 이거 꿈이구나! 다행이었다. 영 이상한 나라에 영영 떨어져버린 줄 알고 가슴을 졸였는데, 꿈이라면 언젠가는 깨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 꿈이 언제 깨어나는지 일단 그것부터가 문제였다.

 

 한편, ‘앨리스라는 것이 그렇게 이 꿈속에서는 중요한 소재인지 이에 대해 3명이서 열띤 토론을 하는 걸 유리는 빤히 지켜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하가 이겼다. 말빨이 아닌, 일명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라는 식의 권력 남용으로.

 

 세하가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성으로 데리고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러자 어느 한 구석에서 말 3마리가 나타났다. 아마도 말을 타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말까지 있는 걸로 봐서는 그 성이라는 곳에서 여기까지는 제법 거리가 되는 거 같았다. 사람은 4, 말은 3마리. 말 하나에는 두 명이 타고 가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제이가 말했다.

 

 “그럼 제가 이 소녀와 같이...”

 “됐다. 내 말을 타고 가도록 하지.”

 “하지만 왕자님...!”

 “자네 말에 비해 내 말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이니, 그런 것뿐이네. 호위를 하는 자가 호위를 해야 하는 자보다 뒤처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오, 이번에는 좀 말로 설득시켰다. 제이는 알겠다며 먼저 말을 타고 앞서갔다. 볼프강은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걸로 봐서는 앞에 1, 뒤에 1명 이런 식으로 호위를 하는 모양이었다.

 

 유리는 말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세하가 물어보았다.

 

 “말을 처음 타는가?”

 “, , 그게...!”

 “그렇게 무섭지 않을 거다. 먼저 올라가거라.”

 

 부드럽게 다독여주는 저건 분명히 세하다. 유리는 조금 힘겹게 말에 올라탔다. 그에 비해 세하는 익숙하게 말 위에 올라갔다. 유리가 처음이듯이 저쪽의 세하도 이런 게 처음일텐데 익숙한 걸로 보아 여기 세하는 확연히 다르구나를 유리는 느꼈다. 세하는 바로 유리 뒤에 앉아, 유리를 향해 안장 어느 부분이든 꽉 잡으라고 말을 한 다음, 세하는 박차를 가볍게 박았다.

 

 처음 맛보는 승마에 유리는 기분이 들뜨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뒤에 세하가 있다는 사실을 유리는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렸다.

 

 

 

* * *

 

 

 

 성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유리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물론 꿈속이지만! - 잠에서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무작정 직진하는 꿈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어졌다.

 

 성에 와서 대충 먹고, 세하랑 이야기 나누고, 주변인들의 대화를 눈치껏 들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앨리스라고 하는 존재가 이 꿈속 세상에서는 매우 커다란 위치에 있는 인물인 거 같았다. 이 세상을 구하는 존재. 이것 하나로 명시할 수 있었다.

 

 유리는 대략적인 사정을 알고 나자, 조금 겁이 났다. 일단 적어도 첩자로 오인 받아 검에 베여서 배드 엔딩으로 꿈에서 깨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 다음 미션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 같은 미션일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유리가 아는 세하라면 흥미롭다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겠지만, 유리는 그러지는 않았다. 꿈이라는 걸 인지해버린 이상, 언젠가는 꿈에서 깨어나겠지~ 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꿈이라는 걸 인지한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유리는 그때서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언젠가 자연스럽게 깨는 꿈이 아니라, 무슨 목적을 달성해야 일어나는 꿈이었던 거야? 그때부터 유리는 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성은 무척이나 넓어서 개인적으로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유리에게 안내자를 자처하는 건 놀랍게도 여기 꿈속의 세하였다.

 

 유리는 세하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즐거웠다. 어느 나라의 왕자님이라는 게 여기 세하의 신분이었지만, 유리와 이야기를 나눌 때의 세하는 유리가 알고 있는 세하 그 자체였다. 말투가 좀 더 사극풍인 것만 빼면.

 

 성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2주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 세하가 유리에게 물었다. 이제 두 사람은 둘만 있을 때는 말을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뭔데?”

 

 세하가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앨리스 아니지?”

 “...?”

 “너는 앨리스가 아니지?”

 “...”

 

 도대체 무슨 답을 해줘야 할까. 잠깐 망설이던 유리는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 난 앨리스 아니야.”

 

 실망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세하의 반응은 의외로 태평했다.

 

 “역시...그럴 줄 알았어.”

 “? 알고 있었어?”

 

 오히려 상대방이 태평스러워서 유리가 더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이에 대해 세하는 덤덤하게 말했다.

 

 “네가 자신을 앨리스라고 말한 적은 없잖아. 그리고 널 앨리스라고 처음에 말했던 것도 나였고.”

 “...그건 그렇지.”

 “나도 잘 모르겠네. 왜 그런 거짓말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는지.”

 “그러게, 왜 거짓말을 했어?”

 

 유리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세하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 시시한 대답은 또 뭐야.”

 “그렇게라도 안하면 그때 호위병들이 널 죽이려고 달려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죄명은 아마도 왕족모욕죄? 한 나라의 귀중한 왕자님에게 초면에 반말을 했으니까. 조금 그때를 회상하던 유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네, 그때의 나를 살려준 건 세하가 맞네.”

 “세하?”

 

 세하라는 이름에 세하는 반응을 했다. 당연하겠지만 여기 세하의 이름은 세하가 아니었다. 따로 뭐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유리는 그걸 들어본 적도 없고 부르기 편하게 마음속으로는 계속 세하를 세하라고 칭하고 있었다. 아마 처음 듣는 이름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유리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걸 변명을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던 유리는 그냥 솔직해진 김에 계속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있던 곳에 너랑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어. 그 아이 이름이 세하야.”

 “...그렇군.”

 “반응이 왜 그렇게 시무룩한 거야?”

 “...시무룩해지지 않았어.”

 

 최선을 다해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세하가 귀여워 보이는 건 자신이 콩깍지에 쓰였기 때문이라고 유리는 여겼다. 세하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럼 네 이름은 뭐지?”

 “내 이름? 처음에 말해주었잖아.”

 “...기억이 나지 않아. 또 그 때는 당황스럽던 참이라 그걸 들을 겨를도 없었고...”

 “하긴 그렇겠네.”

 

 게다가 차분히 대화 나누려고 했다가 제이와 볼프강 물론 이 둘도 이런 이름을 가지지 않았다 이 가로막기도 했었고. 유리는 세하에게 자신을 소개했을 때처럼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내 이름은 서유리야.”

 “서유리...”

 “유리라고 불러.”

 “유리...”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을 되뇌는 세하도 무척 귀여웠다. 물론 유리가 좋아하는 세하랑, 지금 유리 눈앞에 있는 세하랑 다른 존재라는 걸 충분히 알고는 있지만...! 세하의 모습으로 평소 세하가 보여주지 않는 행동들을 소소하게 해주는 모습을 보면 그냥 그런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문득 세하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나가고 싶어?”

 “? 외출하자고?”

 

 성 안에만 갇혀있다시피 해서 마을 구경이라도 해주려는 건가? 그러나 세하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성을 말하는 거 아니야.”

 “그럼?”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어?”

 “...?”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리의 당혹감을 더 배로 증폭시킨 건 세하의 다음 말이었다.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

 “...”

 

 알고...있었던 거야? 유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리의 반응을 보고도 세하는 덤덤히 말했다.

 

 “당연히 이 세계가 유리 네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어떻게...그럼 지금까지 연기였던 거야?”

 “연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리 네가 이걸 꿈이라고 인식하기 전에는 우리는 여기에서 계속 살고 있던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꿈속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이기도 해서, 그 꿈을 꾸는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그 세계는 사라져버린다고. 없어지게 된다고. 그게 그 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종말이기도 했다고.

 

 “뭐야...그런 이야기를 왜 지금 와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그런 말을 들으면 도저히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아...”

 

 마음씨 착한 유리는 도저히 그런 잔인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이 세하의 앞에서는.

 

 세하가 조용히 말했다.

 

 “난 말이야, 유리 네가 꿈에서 깨어났으면 좋겠어.”

 “...”

 “그 나랑 똑같이 닮은 세하라는 사람과 다시 만나야 하잖아?”

 “...!”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그 끝에 먼저 입을 연 건 유리였다.

 

 “...그래도 되는 거야?”

 “아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

 “...과연 그런 걸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꿈을 꿀 수는 없잖아, 유리야.”

 

 다정하게 말해주는 저건, 정말로 세하인줄 알았다. 마음을 굳게 잡은 유리는 자신의 머리를 고정하고 있던 리본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걸 눈앞의 세하에게 건넸다.

 

 “작별선물로 뭐라도 주고 싶은데, 이것밖에 없네.”

 “...”

 “나는 아무래도 저쪽의 세하와 같이 있어야겠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전별(餞別)을 든 세하가 힘차게 말해주었다. 그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유리는 세하를 힘껏 껴안아주었다. 눈물이 차올라서 그냥 눈을 힘껏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덧 잠에서 깬 유리의 시야에는 책 하나가 들어왔다. 유리가 읽다가 깜빡 잠이 들게 만든 책이었다. 책의 제목은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였다.

 

 

 

* * *

 

 

 

 화창한 어느 날, 유리는 쇼핑몰 앞에서 세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하와 데이트가 있어서였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나온 세하는 문득 선물이 있다면서 유리에게 뒤돌아보라고 했다.

 

 “뭔데? 도대체 뭔데?!”

 “잠깐만 기다려봐...”

  

 그리고 세하는 능숙한 솜씨로 유리의 머리에 무언가를 달아주고 있었다.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끈 종류의 무언가라고 유리는 생각했다.

 

 “다 됐다.”

 “...”

 

 다 되었다는 세하의 말에 유리는 유리창을 거울삼아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외관상으로는 긴 생머리의 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여느 때의 유리와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

 

 유리는 자신의 뒤에 묶여있는 검은색의 리본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리본이 고정하고 있는 스타일이 얼마 전 자신이 겪은 기묘한 꿈에서의 자신의 복장과 일치한다는 걸 알아차린 유리는 세하를 뒤돌아보았다. 세하는 그런 자신을 보며 옅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세하야, 너 이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

 

 유리의 질문에 세하는 유리의 귓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찾았다.”

 “...”

 “앨리스.”

 

 귓가가 간지럽다. 그리고 그와 함께 웃음을 참기 힘들어졌다. 유리는 그때처럼,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세하를 힘껏 끌어안았다.

 

 

 

 

 

유리가 꾼 꿈속의 세하는 사실 유리와 같은 꿈을 우연히 꾸었던 현실의 세하였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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